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을 때
전기차 보조금 탈락 후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상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텅 빈 아스팔트만 남았을 때. 우리는 그저 ‘계획이 틀어졌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큰 상실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바로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전기차 보조금 탈락이라는, 어쩌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하나의 사건.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기대와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작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설레었던 시작,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말
몇 달 전의 일입니다. 저는 오랜 고민 끝에 전기차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멋진 소비자가 된 것 같았고, 미래로 한 발짝 다가서는 기분이었죠. 당연히, 보조금은 저의 이 합리적인 선택을 완성시켜 줄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보조금 신청 현황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며, 제 이름이 그 명단에 뜨기만을 기다렸어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새 차에 어울릴 키링을 미리 사두기도 하고, 주말엔 어디로 첫 드라이브를 갈지 행복한 계획을 세웠죠. 제 삶의 한 부분이 이미 그 차로 채워져 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발표일.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화면에 뜬 몇 글자를 한참 동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왜 나에게?’라는 자책감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마치 열심히 줄을 서 있었는데, 바로 내 앞에서 문이 닫혀버린 기분이랄까요.
결국 저는 며칠을 앓다가, 부푼 꿈을 안고 사인했던 계약을 스스로 철회해야만 했습니다. 반짝이던 키링은 서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요.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것
마음이 무겁고 어지러울 때, 저는 아주 오래된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곤 합니다. 만약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계신 부처님께 이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그 마음, 참으로 애썼구나. 하지만 보아라. 그 차가 너에게 주려 했던 기쁨도, 지금 네가 느끼는 상실감도,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떠가는 구름과 같아서, 잠시 머무르다 이내 흩어지는 것이지.”
괴로움은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차가 있어야만 한다’는 그 마음에 매여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기대와 집착을 가만히 손에서 놓아주어야 합니다.
텅 빈 주차장은 상실의 공간이 아니라, 본래의 고요함으로 돌아온 것뿐.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가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먼저 제 아픈 마음에 자비를 베풀어야 했습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찾은 평안
또 다른 길 위에서는, 지친 이들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던 다정한 목자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만약 눈물짓는 제 곁에 예수님께서 함께 걸어주셨다면, 어떤 위로를 건네주셨을까요?
“네가 홀로 광야에 남겨진 것 같으냐. 그렇지 않다. 나는 언제나 마음이 가난하고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걷고 있단다. 너의 실망과 아픔을 내가 모를 리 없으니, 그 무거운 짐을 모두 나에게 내려놓으렴.”
세상이 주는 기쁨이 우리를 채우지 못했을 때, 이제 하늘이 주는 평안을 누려볼 시간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거나 빼앗을 수 없는, 우리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닫힌 문이 우리를 위한 최선의 길일 수 있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세요. 누가 입히고 먹이지 않아도 저리 곱지 않나요. 자동차 한 대로 우리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작은 회복의 시작들
서로 다른 길에서 온 두 분의 지혜는 결국 한 곳을 가리킵니다. 상황의 피해자가 되는 대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주인이 되라는 것이죠. ‘나만 안됐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이것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삶의 한 조각임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마음을 겪고 있다면, 작은 시도들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감정에 이름 붙여주기
‘나 지금, 실망했구나. 속상하구나.’ 하고 자신의 감정을 소리 내어 인정해주세요. 억누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시작됩니다. 저 역시 며칠 동안 ‘아, 나 지금 정말 속상하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제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현재에 감사하기
새 차 대신, 지금 내가 이용하는 버스나 지하철, 혹은 나를 실어 나르는 두 다리에게 고마움을 느껴보세요. 잃어버린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저는 매일 탔던 지하철 2호선에게 새삼 고마워했어요.
작은 기쁨 옮겨심기
새 차에 쓰려던 그 설레는 에너지를 아주 작은 다른 곳에 옮겨 심어보세요. 멋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좋은 향의 핸드크림을 사는 것처럼요. 저는 그 키링 대신 작은 다육식물을 하나 샀습니다. 매일 물을 주며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비어있는 공간의 새로운 의미
우리의 가치는 무언가를 얻거나 소유함으로써 증명되지 않습니다. 보조금 명단에 우리 이름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라는 존재가 덜 소중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예상치 못했던 길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창밖의 고요한 주차장을 한번 바라보세요. 그곳은 더 이상 실패의 상징이 아닙니다.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바로 우리 마음과도 같은 곳입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이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이것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때 다시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면서 말이죠.
당신의 마음속에도 혹시, 오랫동안 비어있는 주차장이 있다면. 그곳을 채우려 애쓰기보다는, 잠시 그 고요함 속에서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그 공간이 다시 의미로 가득 찰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요.
우리 모든 이의 길 위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랍니다.